디스크립션
그날도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오후였다. 점심을 먹고 사무실에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았는데, 이상하게 가슴이 답답하고 심장이 쿵쾅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좀 피곤한가?’ 하고 넘기려는데, 몇 분이 지나도 가라앉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숨이 가빠졌고, 손끝에 힘이 빠지고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입이 바짝 마르고, 눈앞이 어지러워지면서 ‘이러다 죽는 거 아닐까?’ 하는 공포가 확 몰려왔다. 너무 무서웠다. 사무실 밖으로 나와 창문을 열고 숨을 고르는데도 심장은 계속 뛰었고, 손은 떨렸고, 땀은 멈추지 않았다. 결국 병원을 찾았고, 혈압과 심전도, 심장초음파까지 받았지만 의사의 말은 “특별한 이상은 없습니다. 스트레스가 많았던 건 아니세요?”였다.
심각한 심장질환인 줄 알았던 이 경험은, 나중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공황발작’이라는 이름을 듣게 되며 처음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증상이 너무 생생하고 무서웠기에 ‘마음의 문제’라는 설명이 오히려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 나는 내 몸과 마음에서 벌어지고 있던 불균형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공황발작은 몸이 위험하다고 착각할 때 벌어지는 ‘거대한 착오’였습니다
공황발작은 뇌가 잘못된 위기 신호를 보내면서 자율신경계가 과도하게 반응하는 상태다.
쉽게 말해, 외부의 실제 위험과는 무관하게 내 몸이 스스로 ‘지금 위기다’라고 판단하고 그에 맞게 반응하는 것이다. 이때 나타나는 증상은 너무나 현실적이다. 숨이 막히고, 심장이 터질 것 같이 뛰고, 손발이 떨리며, 찬 땀이 흐르고, 어지럽고, 때론 실신할 것 같은 두려움이 밀려온다.
그 강렬한 신체 반응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심장마비’나 ‘호흡곤란’이라고 생각하고 응급실을 찾는다.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2021년 Journal of Affective Disorders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공황발작으로 응급실을 찾은 환자의 약 60%는 심각한 심장질환이 아닌, 자율신경 이상과 불안장애가 원인이었다고 한다(Kasper S et al., J Affect Disord, 2021). 특히 처음 경험하는 사람일수록 증상의 급작스러움과 강도 때문에 그 공포는 더욱 크다.
실제로 공황발작을 경험한 사람들 중 상당수가 병원에서 검사 후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듣고 혼란스러워한다. 분명 몸이 이상한데, 정상이란 말에 위로받기보단 더 무섭다. 그렇기 때문에 공황은 단순히 불안의 문제가 아니라, 신체가 경험하는 실제적 위기감각의 혼란이다. 내 몸이 내 의지와 다르게 반응하는 데서 오는 그 낯선 공포가, 더 깊은 불안을 만들기도 한다.
그날 이후, 나는 ‘다시 올까 봐’ 더 무서웠어요
공황발작이 무서운 이유는 그것이 예고 없이 찾아온다는 것, 그리고 그 증상을 겪고 나면 다시 올까 봐 불안해지는 ‘예기불안’ 때문이다.
나도 그랬다. 회사 출근길 버스 안, 엘리베이터 안, 회의 시작 직전. 조금이라도 몸이 피곤하거나, 긴장이 되면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심장이 조금만 빨리 뛰어도 ‘다시 시작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고, 그 생각이 다시 증상을 불러오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이것이 바로 공황발작의 두 번째 얼굴이다. 발작 자체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그 이후의 불안한 일상이다. 작은 변화에도 민감해지고, 늘 ‘혹시 또?’ 하는 마음에 새로운 장소를 피하게 된다. 일상 속 자유가 점점 줄어들고, 결국은 사회생활에도 지장을 주기 시작한다. 나도 어느 순간 사람 많은 장소에 가는 것이 꺼려졌고, 친한 친구와의 약속도 피하게 됐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속에서는 매일 전쟁이었다.
이 시기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었던 것은 병원에서 받은 진단보다, 공황발작은 병이 아니라 회복 가능한 증상이라는 의사의 말이었다. “이건 당신이 약해서가 아니라, 몸이 너무 오랫동안 무리한 신호를 견디다가 내보내는 경고입니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나는 나 자신을 비난하는 마음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다.
이후 나는 호흡 조절 훈련을 시작했다. 숨이 차오를 것 같은 순간에는 입을 다물고 코로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배를 부풀렸다가 길게 내쉬는 복식호흡을 의식적으로 반복했다. 그와 동시에 나만의 안심 루틴을 만들었다. 낮에는 햇빛 아래에서 산책하고, 밤에는 어두운 방 안에서 조용한 음악을 들으며 잠들 준비를 했다.
이러한 작은 루틴들이 쌓이자 몸의 긴장도가 조금씩 줄었고, 증상이 나타나더라도 그 전처럼 무서워지지 않았다.
공황은 ‘갑자기 무너진’ 것 같지만, 실은 오랜 시간 누적된 피로와 감정의 무게가 한순간에 넘쳐 흘러 터져버린 결과였다.
공황은 약함이 아니라, 내 몸이 보내는 구조신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황을 겪으면서도 “말 못할 병”으로 생각한다. 정신과에 가는 걸 망설이고, 스스로를 약한 사람으로 느끼며 자책한다.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공황은 결코 나약함이 아니라, 오히려 그동안 너무 애썼다는 증거라는 걸. 몸과 마음이 보내는 구조 신호였고, 내 삶이 너무 빠르게 달리고 있었음을 알려주는 경고음이었다.
공황은 제대로 알고 나면, 결코 두려운 존재가 아니다. 나도 공황발작은 여전히 두려운 단어지만, 그것 덕분에 내 일상을 되돌아볼 수 있었고, 지금은 더 나를 살피며 사는 사람이 되었다.
식사, 수면, 호흡, 감정. 그 모든 리듬이 무너졌던 시간을 거쳐, 나는 이제 다시 내 몸의 언어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경험이,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작은 위로가 되길 바란다.
혹시 오늘도 갑작스러운 가슴 두근거림과 불안 속에서 ‘이게 뭔지 모르겠다’고 느끼셨다면,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이 순간부터라도 회복은 시작될 수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