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크립션
비염이 오래돼서 처음으로 코 세척을 시작한 날이었다. 코가 막혀서 답답하고 자꾸 재채기가 나다 보니, 병원에서도 ‘비강세척을 생활화하면 많이 좋아질 수 있어요’라고 권유해서 생전 처음으로 식염수를 사서 따뜻하게 데운 후 조심스럽게 사용해봤다. 확실히 하고 나면 시원한 느낌은 있었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코 세척 후에 코를 세게 풀고 나면 귀 안에서 ‘삐익’ 하거나 ‘탁’ 하고 울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물 들어간 건가?’ 싶었지만, 귀에 물감이 든 것 같은 먹먹함은 없었고, 가끔은 소리만 삐익 하고 났다가 사라졌다. 귀도 아프지 않고 청력도 그대로인 것 같아 일단 넘겼지만, 반복되니 점점 불안해졌다. 특히 코를 세게 풀 때마다 귀 안이 울리는 느낌이 들면서 ‘이러다가 고막에 문제 생기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생겼고, 나처럼 비염 치료 중에 코와 귀 사이 이상한 증상을 경험한 사람도 많지 않을까 싶었다.
코를 풀었을 뿐인데 귀가 울리는 이유, 바로 ‘이관(耳管)’ 때문이었습니다
병원에서 이 증상에 대해 물어봤을 때 의사는 “귀가 울릴 수 있어요. 특히 코를 세게 풀거나 압력을 주면, 코와 귀 사이를 연결하는 이관이 열리면서 그 압력이 고막 안까지 전달되기 때문입니다”라고 설명해주었다
처음 듣는 단어였다. 이관? 우리 귀는 외이, 중이, 내이로 나뉘는데 중이와 코 뒤쪽을 연결하는 관이 바로 ‘유스타키오관(Eustachian tube)’, 즉 이관이다. 평소에는 닫혀 있다가 우리가 하품을 하거나 침을 삼킬 때, 혹은 코를 세게 풀 때 순간적으로 열리는데, 이때 압력이 급격히 전달되면서 귀 안에서 ‘삐’ 하는 고주파 소리나 ‘뚝’ 하는 클릭음이 들릴 수 있다.
나는 당시 코 막힘이 심해 한쪽으로만 세게 풀었고, 세척 후 압력이 더해지니 귀로 전달되는 자극이 커졌던 것이다. 그때 의사가 했던 또 다른 설명이 인상 깊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도 생길 수 있는 증상이에요. 대부분은 잠깐 지나가고 문제가 되지 않지만, 반복되거나 귀가 먹먹하고 청력에 변화가 느껴지면 이관 기능 장애나 삼출성 중이염 같은 문제도 의심해봐야 합니다.”
실제로 2020년 대한이비인후과학회에서는 비염 환자 중 이관 기능 이상을 겪는 비율이 일반인보다 2~3배 높다고 발표한 적이 있다. 이는 코 안의 염증이 장기화되면서 비인두(코 뒤쪽 공간)까지 부어오르고, 그 부종이 이관 입구를 자극해 이상 신호가 나타나는 경우다. 또한 2022년 Journal of Otolaryngology-ENT Research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과도한 비강 세척이 이관 쪽 압력 불균형을 일으켜 일시적인 귀 울림, 이명, 먹먹함을 유발할 수 있다는 내용이 확인되기도 했다. (Krouse HJ et al., JOER, 2022)
그러니까 내가 느낀 ‘코를 풀자 귀에서 삐’는 내 고막에 뭔가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라, 코와 귀가 연결된 통로가 일시적으로 열리면서 압력이 귀 안에 전달된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다는 거였다.
계속 울리거나 먹먹함이 있다면 꼭 확인해야 할 신호도 있어요
처음엔 단순히 ‘그럴 수도 있겠지’ 하고 넘길 수도 있다. 하지만 귀에서 나는 소리가 반복되거나, 소리와 함께 먹먹함, 이물감, 청력 저하가 느껴진다면 꼭 병원에 가보는 게 좋다.
특히 나처럼 비염이 오래 지속되고 코 안 점막이 부어 있는 경우, 이관도 함께 영향을 받게 되면 귀 안의 압력 조절이 제대로 되지 않아 중이염까지 이어질 수 있다. 병원에서는 비강 내시경을 통해 코 뒤쪽을 확인하고, 고막 상태와 이관 기능 검사를 함께 진행한다. 내 경우에는 다행히 고막은 멀쩡했고, 이관도 특별히 막히지 않았지만 “코를 세게 풀지 말고, 한쪽씩 천천히, 가능한 한 입을 벌려 숨을 같이 내쉬는 방식으로 하세요”라는 구체적인 조언을 받았다.
지금도 코가 막혀서 세게 풀고 싶을 때가 있지만, 그날 이후로는 꼭 입을 벌리고, 복식호흡으로 천천히 풀려고 한다. 그리고 코 세척도 너무 세게 주입하거나 양을 과도하게 쓰지 않도록 조절하고 있다. 이렇게 작은 습관을 바꾸고 나니 ‘귀에서 삐 소리’는 거의 사라졌다. 예전엔 그 소리가 날 때마다 깜짝 놀라고 혹시 귀에 문제 생긴 건 아닌지 불안했는데, 이제는 내 몸의 구조와 연결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된 덕분에 무서움보다 ‘이제 내가 조절할 수 있다’는 안심이 든다.
비염을 겪는 많은 사람들이 코 막힘이나 재채기, 두통 같은 증상에는 익숙하지만, 코와 귀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실감하는 순간은 생각보다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만약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분 중에 “나도 코 풀 때 귀가 울려서 깜짝 놀랐다”거나, “이거 문제 있는 건가?” 싶었던 경험이 있다면, 그것은 귀의 이상이 아니라 코 안 압력과 이관의 반응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기억해 두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증상이 반복되거나 더 심해진다면, 미루지 말고 가까운 이비인후과에서 상태를 점검받는 게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는 것도 함께 기억하면 좋겠다.
내 귀에서 났던 그 삐 소리는, 내 몸의 연결성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준 아주 조용한 교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