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크립션
건강검진 결과를 받아들고 나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이건 뭔가 잘못됐나?” 였다. 나는 체중이 늘 고민일 만큼 마른 편이고, 오히려 ‘너는 살 좀 쪄야겠다’는 말을 자주 듣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정작 검사 결과에서 “총 콜레스테롤 238, LDL 158, HDL 42, 중성지방 130”이라는 숫자들이 붉은 글씨로 찍혀 나왔다.
고지혈증? 나처럼 마른 사람도? 나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고, 당장 검색창에 ‘마른데 콜레스테롤 높음’, ‘고지혈증 말랐는데’ 같은 키워드를 쳐보았지만 마땅한 글이 잘 보이지 않았다.
걱정이 커진 나는 병원에 찾아가 결과지를 들고 “이게 왜 이렇게 나왔는지 모르겠어요. 저 살도 별로 없고 튀긴 음식도 잘 안 먹거든요.”라고 말했다. 의사 선생님은 나를 한번 찬찬히 보더니, “이런 분들이 의외로 고지혈증 많아요. 이건 체중의 문제가 아니라, 지방대사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날 이후, 나는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마른 고지혈증’이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되었고, 그 단어는 내 몸에 대한 오해를 하나씩 풀어가는 시작이 되었다.
말랐다고 건강한 건 아니었습니다
체형이 마르다는 건 우리가 흔히 ‘건강하다’고 착각하기 쉬운 조건이다. 복부비만도 없고, 몸무게도 표준보다 낮다면 대부분은 ‘살 찔 걱정이 없겠네’라는 말로 부러움을 받는다.
하지만 문제는 체형보다 체지방 분포, 근육량, 그리고 신진대사 능력이다. 나는 하루 세끼를 먹되 대충 해결했고, 야채나 생선보다는 탄수화물 위주로 식사를 했으며, 운동은 주 1회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커피는 하루에 3잔 이상, 단 음식은 좋아했고, 몸무게가 잘 안 찌는 체질이니까 문제없을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게 고지혈증의 배경이었다는 건 병원에서 피검사와 상담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의사는 “지방대사 능력이 떨어지면 마른 체형에도 불구하고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가 올라가요. 특히 복부 내장지방이 많거나, 활동량이 부족한 경우에는 ‘숨은 대사증후군’이 많습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2022년 The Lancet Diabetes & Endocrinology에 실린 한 연구에서는, 체중은 정상이지만 내장지방 비율이 높은 사람들에게서 고지혈증, 인슐린 저항성, 지방간, 당뇨 전단계 소견이 자주 동반된다는 결과가 발표되었다(Neeland IJ et al., 2022). 체중이 적정하더라도 건강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특히 마른 사람들이 더욱 조용히 대사질환을 겪을 수 있다는 점은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나는 당장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것도, 특별히 아픈 것도 아니었지만, 그저 “검진 수치” 하나로 미래의 심혈관 위험군이라는 진단을 받은 셈이었다.
‘체형’보다 ‘생활’이 문제였습니다 🌿
병원에서는 약을 바로 처방하지 않고, 먼저 3개월 간의 생활습관 개선을 제안했다. 나는 그 3개월을 ‘나를 바꾸는 기간’으로 삼기로 했다. 가장 먼저 식사부터 다시 짰다. 단순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고, 흰 쌀밥 대신 잡곡밥으로 바꾸었고, 과일과 생선, 채소를 매끼 포함시키려 노력했다. 점심과 저녁에는 되도록 국물을 줄이고, 오일을 활용한 조리법으로 바꾸었다. 운동은 처음엔 벅찼지만, 하루 30분 걷는 것으로 시작했고, 점차 집에서 하는 간단한 근력운동을 추가했다. 사실 체중이 적어서 더 살이 빠질까 걱정했지만, 오히려 근육량이 조금씩 늘고, 에너지가 생기며 생활 리듬이 안정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렇게 3개월이 흐른 뒤 재검사에서는 총 콜레스테롤이 217로, LDL이 140대로 내려갔다. 수치상 완벽한 정상은 아니었지만, 개선 추세라는 평가를 받았고, 무엇보다 의사는 “생활습관 변화만으로 이 정도 개선된 건 아주 좋은 사례예요. 지금처럼만 유지해보세요.”라고 격려해주었다.
그때 처음으로 느꼈다. 약을 먹지 않아도, 내 생활을 조금씩 조율하는 것만으로도 몸은 분명히 반응한다는 걸. 마른 체형이라는 겉모습에 안심하고 있었던 지난 시간이 이제는 조금 부끄러웠고, 검진 결과가 나에게 건강을 돌아보라는 신호였다는 걸 이제는 감사하게 느낀다.
고지혈증은 무겁지 않은 불청객처럼 찾아옵니다
나는 예전까지 고지혈증이라는 병이 기름진 음식을 자주 먹는 중년 남성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이 병은 겉으로 보이는 체중과 상관없이, 오랫동안 이어진 무심한 생활습관과 대사기능 저하라는 조용한 길을 따라 다가온다는 걸. 그리고 그 길을 막는 방법은 거창한 다이어트나 약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생활 리듬의 변화라는 것도.
여전히 나는 마른 체형이다. 하지만 지금은 혈중 지질 수치를 조절하기 위해 하루에 꼭 한 번은 생선을 먹고, 채소와 잡곡을 챙기고, 커피를 줄이고, 스트레칭이라도 하며 움직이려 한다. 이런 루틴이 몸을 살리고 있다는 것을 이제는 믿는다.
혹시 지금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나는 살이 없는데 왜 이런 수치가 나왔지?”라며 당황하고 있다면, 그것은 당신이 게을러서도, 잘못해서도 아니라, 몸이 보내는 조용한 위험 신호일 수 있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반응하면 늦지 않다. 고지혈증은 겉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더 무섭고, 동시에 지금이라도 바꿀 수 있다. 나는 그걸 경험했다. 오늘부터라도 당신의 식사 한 끼, 걸음 한 번, 휴식 한 순간이 당신의 수치를 바꾸는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걸, 나처럼 알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