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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검진 결과표를 받아들고 AST, ALT 수치가 기준보다 높다는 항목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간 수치가 높네요”라는 설명을 들으면 대부분 ‘술 때문인가?’라는 생각부터 든다. 하지만 전혀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에게서도 이 간 효소 수치가 올라가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간은 침묵의 장기라 불릴 만큼 이상이 있어도 초기엔 증상이 거의 없다. 특히 최근엔 마른 체형, 젊은 연령대에서도 간 기능 이상 소견이 증가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술을 마시지 않아도 AST, ALT 수치가 상승할 수 있는 원인과 생활 속 개선 방법을 실제 경험과 함께 알아본다.
술을 마시지 않는데 간수치가 높다는 결과를 받았을 때
처음 간 수치가 높게 나왔던 건 회사 건강검진에서였다. 나는 평소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고, 회식 때도 대부분 탄산수로 대신했다. 그런데 ALT 수치가 기준치인 40을 훌쩍 넘겨 60 이상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간단히 넘기기엔 찜찜한 마음에 병원을 찾았고, 간 초음파와 혈액검사를 추가로 받았다. 의사의 말은 이랬다. “지방간 의심이 됩니다. 술 때문이 아니라 생활 습관이나 체내 대사 문제일 수도 있어요.”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간 효소 수치(AST, ALT)는 간세포가 손상되었을 때 혈중으로 방출되는 단백질로, 술 외에도 다양한 원인에 의해 상승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비알콜성 지방간(NAFLD)이다. 실제로 비알콜성 지방간은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 사람에게도 흔히 나타나며, 간세포에 지방이 침착되면서 만성 염증을 유발하고 간수치를 높이는 주범 중 하나다.
2019년 서울아산병원 간센터 연구에 따르면, 국내 성인의 약 30%가 비알콜성 지방간을 가지고 있으며, 이 중 상당수가 정상 체중이거나 마른 체형이었다. 특히 여성과 30~40대 직장인에서 술과 무관하게 간 기능 이상이 확인되는 사례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보고도 있다.
체중, 스트레스, 식습관… 간에 영향을 미치는 숨어 있는 요인들
“살도 안 찌고 술도 안 마시는데 왜 간이 나빠질까?”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불규칙한 식사, 자극적인 음식, 운동 부족, 늘어난 스트레스가 겹쳐져 있었다. 하루 세 끼 중 한 끼는 건너뛰고, 점심은 대충 김밥이나 컵라면, 저녁은 늦은 시간 배달 음식으로 채우는 생활이 반복되고 있었다. 이처럼 불균형한 식습관과 대사 문제는 간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간은 혈액 내 당, 지방, 단백질을 조절하고 해독 작용을 수행하는 기관이다. 잦은 혈당 변동, 트랜스지방 섭취, 고탄수화물 위주의 식사는 간세포 내 지방 축적을 유도해 간세포를 서서히 손상시킨다. 이런 손상이 누적되면 AST, ALT 수치가 서서히 오르기 시작하고, 이상이 없는 듯 보이지만 간 내부에서는 염증 반응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2021년 미국 소화기학회(American Gastroenterological Association)에서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운동량이 적고 당 섭취가 많은 현대인의 식생활 패턴은 음주 없이도 간수치 상승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으며, 특히 앉아 있는 시간이 긴 직장인 그룹에서 비알콜성 지방간 발생률이 높게 나타났다 (AGA Clinical Practice Update, 2021).
게다가 만성 스트레스 역시 간 기능에 영향을 준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분비되는 코르티솔은 지방 축적을 촉진하고, 간 대사 기능을 떨어뜨리는 역할을 한다. 나의 경우도 프로젝트 마감 시기마다 속쓰림, 피로감과 함께 간수치가 더 높게 나왔고, 스트레스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다.
간수치를 낮추기 위한 생활습관, 가능한 실천부터
간수치 상승은 특별한 증상이 없기 때문에 자칫 방치하기 쉽다. 하지만 조기에 생활습관을 바꾸면 간세포는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나 역시 처음 간수치 상승 결과를 받은 후, 큰 결심을 하지 않아도 실천 가능한 방법부터 하나씩 바꿔나갔다.
우선, 식습관의 변화가 가장 중요했다. 단 음료 대신 물과 무가당 차를 마셨고, 흰쌀밥 대신 현미밥, 정제된 탄수화물 대신 채소와 단백질 위주 식사를 유지했다. 간에 좋은 음식으로 알려진 비트, 브로콜리, 올리브오일, 등푸른 생선을 자주 섭취했으며, 간 해독을 돕는 밀크시슬(실리마린) 보조제를 3개월 정도 복용했다. 2020년 Journal of Clinical and Translational Hepatology에 실린 리뷰 논문에 따르면, 실리마린은 항산화 작용을 통해 간세포 회복을 촉진하고, ALT 수치를 유의하게 낮추는 데 효과를 보였다고 한다 (Polyak SJ et al., J Clin Transl Hepatol, 2020).
또한 하루 30분 이상 걷는 가벼운 유산소 운동을 시작했다. 근육량이 적을수록 지방이 간에 더 쉽게 쌓이기 때문에, 규칙적인 운동은 내장지방 감소뿐 아니라 간 기능 회복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실제로 2022년 Hepatology 학술지에 발표된 연구에서도, 주 3회 이상 운동을 실천한 NAFLD 환자 그룹에서 ALT 수치가 평균 20% 이상 감소한 결과가 보고되었다 (Sasaki R et al., Hepatology, 2022).
마지막으로 스트레스 관리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명상, 충분한 수면, 일정한 리듬을 유지한 생활은 교감신경 자극을 줄이고 간의 대사 부담을 낮춘다. 나는 업무 중 중간중간 스트레칭과 호흡을 통해 긴장을 풀어주는 루틴을 만들었고, 그 효과는 생각보다 컸다. 과로와 스트레스에서 간이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결론: 간수치 상승, ‘술 때문이 아니다’라는 사실부터 받아들이자
건강검진에서 AST, ALT 수치가 높다고 나왔을 때, 단순히 “술을 많이 마셨나?”라고 넘기기엔 간은 너무 소중한 장기다. 술을 전혀 마시지 않아도 잘못된 식습관, 운동 부족, 스트레스, 수면 부족 등으로 간은 조용히 손상될 수 있다. 다행히 간은 재생력이 뛰어난 장기이기에, 지금부터라도 생활습관을 바꾸면 회복의 길은 얼마든지 있다.
나처럼 “난 술 안 마시니까 괜찮겠지”라고 생각했던 사람일수록 간 건강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무증상의 간 이상은 검진에서 발견되지 않으면 놓치기 쉽고, 그로 인해 만성 질환으로 진행될 수도 있다. 오늘부터라도 간을 위한 한 끼, 한 걸음, 한 시간의 휴식을 실천해보자. 우리의 간은 침묵하지만, 우리 삶의 리듬을 누구보다 정직하게 반영하는 기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