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을 안 먹으면 살이 빠질까? 호르몬 균형과 지방의 역할

지방을 안 먹으면 살이 빠질까? 호르몬 균형과 지방의 역할

디스크립션

‘지방은 살찐다’는 인식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식습관에 영향을 준다. 체중을 줄이기 위해 지방을 극단적으로 제한하는 저지방 식단을 택하는 이들이 많지만, 지방을 피하는 것이 과연 건강한 다이어트일까? 오히려 오랜 기간 지방 섭취를 제한할 경우 호르몬 균형이 무너지고, 오히려 체중 감량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 글에서는 지방이 체내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저지방 식단이 장기적으로 미치는 영향에 대해 실제 사례와 연구 자료를 바탕으로 풀어본다.


지방을 제한하면 왜 호르몬 균형이 무너질까?

내가 처음 다이어트를 결심했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식단에서 ‘지방’을 없애는 것이었다. 삼겹살 대신 닭가슴살, 달걀은 흰자만, 샐러드 드레싱은 금지. 한동안 체중은 빠졌고, 효과가 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2~3개월쯤 지나면서 피로감이 심해지고, 생리 주기가 불규칙해졌으며, 감정 기복도 심해졌다. 처음에는 단순히 다이어트로 인한 스트레스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에야 ‘지방 부족’이라는 원인을 알게 되었다.

지방은 단순히 에너지원이 아니다. 체내에서 다양한 호르몬의 합성과 균형을 조절하는 필수 영양소다. 특히 성호르몬(에스트로겐, 테스토스테론)과 부신피질호르몬(코르티솔 등)은 지방을 기반으로 합성된다. 지방 섭취가 부족해지면 이런 호르몬의 생산도 원활하지 않게 되며, 이는 생리불순, 무월경, 피로, 수면 장애 등 다양한 증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2016년 The Journal of Clinical Endocrinology & Metabolism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저지방 식단을 6개월 이상 유지한 여성들 중 약 30%가 생리 주기 변화나 무배란 증상을 경험했다는 결과가 있다 (Meczekalski B. et al., JCEM, 2016). 이들은 모두 체중은 감소했지만, 호르몬 불균형과 관련된 증상이 나타났고, 일부는 골밀도 저하까지 관찰되었다.

호르몬 균형이 깨지면 체중 감량 속도도 느려질 수 있다. 몸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판단해 대사율을 낮추고, 에너지를 아끼려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살이 빠지다 다시 정체됐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이는 단순한 정체기가 아니라, 생리학적 방어 반응일 수 있다.


지방은 ‘좋은 지방’과 ‘나쁜 지방’이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우리가 말하는 ‘지방’은 종류가 있다. 몸에 유익한 불포화지방산(예: 오메가-3, 올리브유, 견과류의 지방)과 해로운 포화지방, 트랜스지방(예: 가공식품, 튀긴 음식)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무조건적인 ‘저지방’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다이어트를 시작할 당시 모든 종류의 지방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견과류나 아보카도도 피했고, 심지어 식물성 오일조차 꺼렸다. 하지만 이후 영양 상담을 받으면서 ‘좋은 지방’을 충분히 섭취하지 않으면 오히려 염증 수치가 증가하고, 인슐린 저항성이 높아져 지방이 더 쌓이기 쉬운 체질로 바뀔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2015년 Cell Metabolism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트랜스지방이 풍부한 식단은 인체의 염증 반응을 유발하고, 인슐린 민감성을 저하시키며 복부 지방을 증가시킨다는 결과가 있다 (Friedman JE et al., Cell Metab, 2015). 반면, 불포화지방산을 충분히 섭취한 사람들은 오히려 지방 연소율이 증가하고,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가 안정되었다.

특히 오메가-3는 항염 작용뿐 아니라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해 기분 안정에도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0년 American Journal of Clinical Nutrition에서는 오메가-3 지방산을 꾸준히 섭취한 군이 그렇지 않은 군보다 우울감, 피로감에서 현저히 낮은 수치를 보였다는 결과도 있다 (Su KP et al., AJCN, 2010). 이는 지방이 단순히 체형 유지에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신 건강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의미한다.


저지방 식단의 장기적 위험과 균형 잡힌 식단의 필요성

처음엔 효과가 있어 보이는 저지방 식단. 하지만 장기적으로 지속하면 대사 기능 저하, 면역력 감소, 피부 건조, 집중력 저하, 호르몬 불균형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나는 저지방 식단을 6개월 가까이 유지했을 때, 피부가 푸석해지고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 정도로 피로했다. 무엇보다 체중이 정체되면서 다이어트에 대한 의욕도 급격히 떨어졌다.

이후 식단을 조금씩 바꿨다. 매끼 식사에 좋은 지방을 일정량 포함시켰고, 특히 아침에는 올리브유를 뿌린 샐러드나 삶은 달걀, 견과류 등을 추가했다. 간식으로는 아보카도 스무디나 연어 샐러드를 즐겼다. 놀랍게도 지방을 섭취했음에도 불구하고 체중은 오히려 안정적으로 감소했고, 체지방률도 줄어들었다. 무엇보다 에너지가 회복되었고, 생리 주기와 수면의 질도 개선되었다.

2021년 Nutrition Reviews에서는, 탄수화물과 지방의 균형이 적절히 잡힌 식단이 장기적으로 체중 조절과 건강 유지에 가장 효과적이라는 메타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이 연구에서는 극단적인 저지방 식단이나 고지방 식단보다는, 전체 에너지의 25~35%를 건강한 지방으로 구성한 식단이 호르몬 균형과 대사 건강에 가장 적합하다고 결론지었다 (Sacks FM et al., Nutr Rev, 2021).

건강한 다이어트를 원한다면 지방을 무조건 줄이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좋은 지방을 적절히 포함한 식단이 오히려 호르몬 균형을 지키고, 에너지를 유지하며, 체중 감량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은 각각의 역할이 있고, 그 균형이 무너지면 우리 몸은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


결론

“지방을 안 먹으면 살이 빠질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단기적으로는 그럴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이다. 지방은 단순히 피해야 할 영양소가 아니라, 우리 몸을 구성하고 호르몬을 조절하며, 세포를 보호하는 중요한 요소다. 특히 건강한 지방을 꾸준히 섭취해야 호르몬 균형이 유지되고, 대사와 기분, 면역력까지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혹시 지금도 ‘저지방 = 건강’이라는 공식을 믿고 있다면, 오늘부터라도 식단을 다시 돌아보자. 아보카도 한 조각, 견과류 한 줌, 올리브유 한 스푼이 건강한 변화를 시작할 수 있다. 균형 잡힌 식단이야말로 진정한 다이어트이자, 삶의 질을 높이는 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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