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크립션: 꼭 약 먹어야 하나요?
건강검진 결과에서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양성’이라는 소견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솔직히 놀랐다.
위내시경은 거의 정상이었고, 특별히 속쓰림이나 통증 같은 증상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게 위암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데… 지금 당장 약을 먹어야 하나?’ 의사에게 묻기도 전에 이미 인터넷 검색으로 수많은 정보와 후기들 속에서 더 혼란스러워졌다.
이번 글에서는 내가 실제로 겪은 ‘헬리코박터 양성 판정’ 경험과, 약 복용 여부를 결정할 때 고려했던 점들,
그리고 전문가들이 제시한 최신 가이드라인과 치료 기준을 쉽고 구체적으로 정리해 보려 한다.
‘양성인데 그냥 지켜보자고요?’ 처음엔 솔직히 더 불안했어요
건강검진 결과에서 위내시경 사진과 함께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양성’이라는 글을 본 건 작년 봄이었다.
위점막에는 특별한 염증 소견도 없고, 위축성 위염이나 장상피화생도 없다는 진단이었지만
“위암과 관련 있다”는 설명이 옆에 작게 붙어 있어 그날 하루 종일 불안했다.
나는 속쓰림도 없었고 소화도 잘 되는 편이라, ‘내가 위장 질환을 가지고 있었나?’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병원에 방문해서 결과지를 보여주며 “그럼 당장 약 먹어야 하나요?”라고 묻자 의사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꼭 그렇진 않아요. 양성이라고 해도 모든 사람이 치료 대상은 아닙니다.”
이해하기 어려웠다. 위암 위험을 높인다는 헬리코박터균이 양성인데 약을 안 먹는다는 게 말이 되나 싶었다.
하지만 의사의 설명은 조금 더 구체적이었다. “균이 있다고 무조건 약을 먹기보다, 위 점막 상태나 가족력, 재감염 위험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증상이 없고, 위내시경상 위축성 변화도 없다면 치료하지 않고 경과를 관찰할 수도 있어요.”
나는 그 말이 처음엔 불안했지만, 며칠 후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고 나서야 모든 헬리코박터 양성이 치료 대상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헬리코박터 양성, 언제 치료가 꼭 필요한가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은 위산 환경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강한 균이다. 위염, 소화성 궤양, 위암과의 연관성이 밝혀져 있으며,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헬리코박터를 1급 위암 발암인자로 분류하고 있다. 그래서 ‘양성’이라는 말만 들어도 두려움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 두려움이 항상 ‘즉시 약 복용’으로 이어져야 하는 건 아니다.
대한상부위장관헬리코박터학회와 대한소화기학회에서는 헬리코박터 제균 치료가 필요한 경우를 아래처럼 제시하고 있다 (2021년 국내 가이드라인 기준).
- 위염과 함께 위축성 변화 또는 장상피화생이 동반된 경우
- 위·십이지장 궤양을 앓고 있는 경우
- 위암 수술 후 남은 위에 헬리코박터가 검출된 경우
- 직계 가족(부모, 형제자매 등) 중 위암 환자가 있는 경우
- MALT 림프종 등 위 점막 관련 질환이 있는 경우
즉, 양성 판정 후에도 위 내 상태나 가족력, 과거 병력 등을 함께 고려해 치료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2022년 The Lancet Gastroenterology & Hepatology에 실린 메타 분석 연구에서도, 헬리코박터 양성인 무증상 성인 중 일부는 치료를 받지 않아도 위암 발병률이 유의미하게 증가하지 않았다는 결과도 있었다
(Yamaji Y et al., Lancet Gastroenterol Hepatol, 2022).
하지만 가족력이 있거나, 점막 변화가 의심될 경우에는 치료를 미루지 말고 2주간의 제균 치료를 받는 것이 권고된다.
내 경우는 다행히 가족력도 없고, 위내시경 상 점막 변화도 없어서 ‘6개월~1년 후 재검진과 필요 시 제균 치료’로 결정을 내렸다.
꼭 약 먹지 않아도, 내 위 건강을 지키는 습관부터 시작했어요
처음엔 약을 먹지 않는다는 사실이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의사의 설명을 믿고 나서부터는 ‘그렇다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뭘까?’를 고민하게 됐다.
나는 그날부터 위 건강을 지키기 위한 생활습관을 하나씩 만들어갔다.
먼저 아침 식사를 반드시 챙겨 먹는 것부터 시작했다. 공복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위산이 과도하게 분비되어
헬리코박터균의 활동 환경이 더 활발해질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커피 섭취량을 줄이고, 평소 자주 먹던 맵고 짠 음식, 야식, 탄산음료를 줄였다. 하루 수분 섭취량은 2L 이상을 유지했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스트레스를 줄이는 루틴이었다. 위 점막은 스트레스에 매우 민감하다는 걸 느끼고 나서부터 매일 10분씩 복식호흡과 명상을 생활화했다.
6개월 뒤 재검사에서는 위내시경상 큰 변화 없이 상태가 유지되었고, 의사도 “지금처럼 관리하시면 약 없이도 좋은 경과 유지가 가능합니다”라고 말했다.
제균 치료는 필요하면 반드시 해야 하지만, 당장 약을 먹지 않더라도 생활습관 개선이 실제로 위 건강을 유지하는 데 큰 힘이 된다는 걸 몸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
결론: 헬리코박터 양성은 ‘판결’이 아니라 ‘출발점’이에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양성이라는 결과는 막연한 두려움보다, 내 위 건강을 다시 점검해보라는 몸의 요청일 수도 있다.
약을 먹을지 말지 고민되신다면, 먼저 위내시경 소견, 가족력, 기존 증상부터 확인해보는 것이 먼저다. 무조건 치료하거나, 반대로 아무 조치도 하지 않는 극단적인 태도보다는 내 몸을 이해하고, 의사와 함께 결정하는 균형 있는 시선이 필요하다.
위암 예방의 첫걸음은, 수치가 아니라 생활 안에서 시작되는 작은 선택들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