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이유 없이 피곤했다. 아침에 일어나기가 너무 힘들었고, 겨우 일어나도 하루 종일 몸이 무겁고 멍한 느낌이 지속됐다. 퇴근 후에는 아무것도 하기 싫을 정도로 에너지가 바닥났다. 처음엔 단순한 피로 누적이라고 생각했다. 직장과 집을 오가며 쌓인 스트레스, 가사노동, 그리고 나도 모르게 소홀해진 자기 관리 때문일 거라 여겼다.
그러다 점점 이상한 증상들이 늘기 시작했다. 체중이 특별히 늘지 않았는데도 얼굴이 자주 붓고, 아침에 손가락이 뻣뻣하거나 발이 무거운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 여름인데도 시원한 곳에서는 유독 추위를 잘 타게 됐다. 한여름 에어컨 바람에 오들오들 떨며 담요를 덮는 내 모습을 보면서, ‘나한테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빈혈을 의심했다. 하지만 건강검진에서 나온 수치는 모두 정상이었고, 빈혈 수치 역시 문제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때 처음 ‘갑상선 저하증’이라는 말을 들었다. 진료실에서 갑상선 호르몬 수치를 확인하자는 의사의 권유로 혈액 검사를 받은 결과, TSH(갑상선 자극 호르몬)는 정상 상한보다 높았고, T3와 T4 수치는 낮은 경계였다. “갑상선 기능 저하증 초기 소견이네요. 이래서 쉽게 피곤하고, 몸이 붓고, 추위에 민감하게 반응하신 거예요.”라는 설명에 그제야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갑상선 기능 저하증은 우리 몸에서 대사 작용을 조절하는 갑상선 호르몬이 부족해지면서 나타나는 질환이다. 이 호르몬은 체온 조절, 에너지 생성, 뇌 기능, 심장 박동 등 거의 모든 신체 기능에 관여하기 때문에, 호르몬 수치가 떨어지면 다양한 전신 증상이 나타난다.
내가 경험했던 피로감, 부종, 추위 민감성은 모두 갑상선 기능 저하증의 대표적인 초기 증상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일상적인 스트레스나 수면 부족으로 오인하거나, 빈혈 또는 우울증과 같은 다른 질환으로 착각해 넘기기 쉽다. 실제로 미국 갑상선학회(American Thyroid Association)의 2018년 보고서에 따르면, 갑상선 기능 저하증 환자 중 약 60%가 본인의 증상이 갑상선 문제와 관련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지낸다고 한다. (출처: American Thyroid Association, “Thyroid Disease Facts”, 2018)
특히 여성은 남성보다 갑상선 저하증에 걸릴 확률이 훨씬 높고, 30~50대 여성에게서 많이 발생한다. 출산 후에 나타나는 일시적인 ‘산후 갑상선염’을 시작으로 만성 갑상선염(하시모토 갑상선염)으로 진행되며 기능 저하가 나타나는 경우가 흔하다.
나의 경우도 출산 이후 체력 저하와 호르몬 변화로 인해 생긴 변화를 일상적인 피로로 여겨 넘기다가, 2~3년이 지난 후에야 제대로 진단을 받을 수 있었다. 특히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이 겹치면 증상이 더 두드러졌기 때문에, 생활 습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개선되지 않는다면 반드시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갑상선 저하증은 여러 다른 질환과 증상이 겹치는 경우가 많아 진단이 늦어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빈혈과 마찬가지로 피로와 무기력감, 어지러움 등이 나타나며, 우울증처럼 의욕 저하, 집중력 저하도 경험할 수 있다. 때문에 감정적 문제나 생활 스트레스 탓으로 넘기기 쉬운 것이다.
하지만 갑상선 저하증은 일반적인 빈혈과 달리 ‘추위에 민감해지는 증상’이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손발이 유독 차고, 여름에도 두꺼운 이불을 덮고 자야 잠이 드는 경우, 혹은 목이 쉽게 쉬고, 변비가 심해지며, 눈꺼풀이 부어 보이거나 피부가 건조해지는 등 전신적인 대사 저하의 징후가 있다면 갑상선 기능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다.
또 하나 중요한 구별 포인트는 회복 속도다. 일반적인 피로나 일시적 감정 기복은 며칠 휴식을 취하면 어느 정도 회복되지만, 갑상선 저하증에서 오는 피로감은 계속되는 느낌이 강하다. 낮잠을 자도 개운하지 않고, 아침에 일어날 때부터 이미 피곤한 상태로 하루를 시작하게 된다. 나 또한 주말 내내 쉬어도 월요일 아침이 가장 힘들었고, 아무리 잠을 많이 자도 개운하지 않은 상태가 몇 달이나 지속됐다.
실제 연구에서도 이러한 점이 입증되었다. 유럽 내분비학회(European Society of Endocrinology)가 2020년 발표한 연구에서는, 갑상선 기능 저하 환자 80% 이상이 “하루 종일 계속되는 피로감”을 가장 먼저 경험한 증상이라고 답했다. (출처: ESE Clinical Guidelines, 2020, “Management of Hypothyroidism”)
갑상선 기능 저하증은 초기에 진단되면 약물 치료로 잘 조절된다. 대부분의 경우 레보티록신(Levothyroxine)이라는 합성 갑상선 호르몬제를 복용하며, 수치는 안정적으로 관리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증상을 방치하거나, 치료가 필요한 상태인데도 제대로 진단받지 못한 채 지내다 보면, 더 심각한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갑상선 호르몬이 부족하면 심장 기능 저하, 고지혈증, 우울증, 여성의 경우 불임이나 유산의 원인이 되기도 하며, 드물게는 ‘점액수종 혼수(Myxedema coma)’라는 생명을 위협하는 상태로 진행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조금이라도 의심되는 증상이 지속된다면, 혈액 검사를 통해 TSH와 T4 수치를 확인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치료를 시작한 후 몇 달이 지나자 확실히 몸이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게 훨씬 수월해졌고, 감정 기복도 줄었으며, 무엇보다 에너지가 돌아오는 것이 체감됐다. 이전까지는 늘 ‘내가 왜 이렇게 피곤할까’라는 물음에 답이 없었지만, 원인을 알고 나니 해결 방법도 분명해졌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이유 모를 피로, 추위 민감성, 무기력, 부종 같은 증상을 경험하고 있다. 그리고 나처럼 빈혈이나 단순한 스트레스 탓으로 여긴 채 중요한 신호를 지나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혹시 모를 갑상선의 이상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내 몸의 변화에 귀 기울여보자. 정기적인 건강검진과 간단한 혈액검사만으로도 조기에 진단하고 관리할 수 있다.
지금, 몸이 보내는 신호에 응답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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