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스크립션
처음 복통과 잦은 설사를 경험한 건 직장 생활에 적응하던 초년 시절이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배가 아프고, 중요한 회의나 약속이 있을 땐 꼭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는 나 자신이 답답했다. 병원을 찾았지만 혈액검사, 대장내시경 모두 “정상입니다”라는 결과가 돌아왔다. 그때 의사는 “과민성 대장증후군 같네요”라고 이야기했고, 나는 처음 들어보는 병명에 의아함을 느꼈다. 왜 검사는 정상이지만, 이토록 내 장은 예민한 걸까?
과민성 대장증후군(IBS, Irritable Bowel Syndrome)은 전 세계 인구의 약 10~15%가 경험하는 흔한 기능성 장 질환이다. 국내에서도 젊은 층뿐 아니라 30~50대 직장인들에게서 흔하게 나타나는 증상으로, 일상에 큰 불편을 초래하지만 정작 병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주된 증상은 복통, 설사 또는 변비, 복부 팽만감, 배에 가스가 차는 느낌 등이다. 특히 특징적인 것은 ‘스트레스’와의 밀접한 관계다. 누구나 한 번쯤은 중요한 시험이나 면접 전에 배가 아프거나 설사를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증상이 반복되면 단순히 심리적인 문제라고 보기 어려운 지경이 된다.
‘장-뇌 연결 축(Gut-Brain Axis)’이란? 스트레스가 장을 조절한다
최근 연구들은 ‘장-뇌 연결 축(Gut-Brain Axis)’에 주목하고 있다. 이는 뇌와 장이 신경, 면역, 호르몬 경로를 통해 서로 긴밀하게 소통한다는 개념이다. 단순히 위장 문제라고 생각되던 증상들이 실제로는 중추신경계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2018년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교에서 진행된 연구에 따르면,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율신경계의 균형이 깨지면서 장의 운동성과 감각 조절이 비정상적으로 변한다고 한다. 그 결과 장이 과도하게 움직이거나 감각이 예민해져 복통, 잦은 배변, 복부 팽만감 등이 나타난다. (출처: Mayer EA. The Gut-Brain Axis. J Clin Invest. 2018)
나 역시 중요한 발표가 있는 날 아침엔 꼭 복통이 찾아왔다. 음식 때문인가 싶어 식단을 바꿔보기도 했지만 큰 변화는 없었다. 그러나 스트레스를 줄이고, 아침 루틴을 안정적으로 유지한 날에는 증상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단순한 ‘마음먹기’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스트레스가 장의 기능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진단이 어렵고 애매한 질환, 관리가 핵심이다
과민성 대장증후군은 진단이 쉽지 않다. 구조적인 이상이 없기 때문에 위내시경이나 대장내시경, CT 같은 검사로도 이상 소견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기능성 장질환’으로 분류되며, 증상의 지속 여부와 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바탕으로 진단된다. 어떤 경우에는 대장암이나 염증성 장질환과의 구분이 필요해 불필요한 검사나 오진이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과민성 대장증후군은 생명을 위협하는 병은 아니다. 중요한 건, 증상을 악화시키는 요인을 파악하고 생활 습관을 조절하는 것이다. 나의 경우, 일정하지 않은 식사 시간과 카페인, 유제품 섭취가 큰 영향을 줬다. 특히 아침 공복에 커피를 마시는 습관이 심한 복통과 설사를 유발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고, 그 뒤로는 물과 미음처럼 부드러운 음식을 먼저 먹고 천천히 카페인을 줄이는 방식으로 바꾸었다.
이처럼 자신의 장을 잘 ‘관찰’하는 것이 과민성 대장증후군 관리의 출발점이 된다. 또한, 스트레스 조절은 단순한 기분 문제가 아니라 장 기능의 안정을 위한 필수 요소다. 대한소화기기능성질환·운동학회에서는 명상, 요가, 인지행동치료(CBT)가 증상 개선에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출처: 대한소화기기능성질환·운동학회, 2020)
스트레스 해소, 장 건강의 첫걸음
최근 들어 나는 아침 명상을 일과에 포함시키고 있다. 10분간 호흡을 집중하며 그날의 감정을 정리하는 시간이지만, 확실히 하루가 덜 불안하고 배가 편안한 날이 많아졌다. 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슬픔, 분노, 불안 같은 감정이 장을 자극해 불편한 증상을 유발하고, 그 불편함이 다시 심리적인 스트레스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그런 점에서 과민성 대장증후군은 단순히 ‘장을 치료하는 병’이 아니라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병’일지도 모른다. 식습관, 수면 습관, 감정 관리 등 우리가 일상 속에서 놓치고 있던 것들을 점검하게 만든다.
한 연구에 따르면, 명상이나 CBT와 같은 심리치료가 약물치료만큼의 증상 개선 효과를 보였다는 결과도 있다. (출처: Ford AC et al., Cochrane Database Syst Rev. 2019)
결국, 이 질환을 대하는 태도는 단순히 약을 먹고 낫기를 기다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스스로의 감정, 습관, 리듬을 세심하게 들여다보며 ‘장과의 대화’를 이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 과민성 대장증후군은 흔하지만 결코 가볍게 넘길 질환이 아닙니다. 내시경 결과가 정상이더라도, 느껴지는 불편함은 진짜입니다. 스트레스를 줄이고 내 몸의 리듬을 바로잡는 것이 장 건강을 지키는 첫걸음입니다.